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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후기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성령세례에 그 배경을 두고 있는 어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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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08회 작성일 19-06-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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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하디(Hardie, Robert A., 河鯉泳, 1865~1949)

하디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1865년 6월 11일 출생하여 1887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890년 9월 30일 25세에 YMCA선교회 지원으로 우리나라에 가족과 함께 의료 선교사로 내한했다. 한국에 와서 미국 남감리선교회로 소속을 변경하였으며 1899년에는 개성에 남도병원을 설립하였다.
70세까지 헌신하면서 세브란스 병원 의사로, 협성신학교 교장으로 수년간 봉사, 25세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일생을 선교하다가 70에 은퇴, 그 후 본국으로 돌아갔다. 딸 둘도 한국에서 태어나 풍토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초창기 한국 선교에 너무나 큰 업적을 이룬 귀하고 귀한 선교사이다.
하디 선교사는 원산에서 최선을 다해 의술을 베풀며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가 원산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느낀 것은 영적 폐허였다.
신자들은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았으며 성적으로도 방종했다.
또한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들에게 성찬을 금하고 심한 경우에는 교회에서 제명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어떤 집회소에서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여서 무당굿을 하려고까지 했다.
하디 선교사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그는 한국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보기 원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예’를 보지 못했다.
하디는 이 모든 원인이 성령의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악한 세력이 자신을 넘어뜨리려고 궤계를 부리는데 자신은 그것을 이길 힘이 없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영적 상황을 “마치 악령의 세력들이 연합하여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확신도, 이미 이루어 놓았다고 생각했던 사업도 파괴하려고 덤벼들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나의 사역에 결과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 안에 있는 장애물을 분명히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점점 더 뚜렷하게 영적인 능력의 결핍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에 그는 오랫동안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고 있었다.
마침 하디는 1903년 여름 남감리교 여선교사 모임에서 성경공부 및 기도회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침 중국에서 활동하던 여선교사 화이트(M. C. White)가 왔고, 한국에서 일하던 맥컬리 선교사 등이 함께 했다.
하디는 그 모임을 인도하던 중 먼저 “네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는 성령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하디는 이렇게 고백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께서 제게 첫 번째로 요구하신 것은 제가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그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수치와 체면 손상을 무릅쓰고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했다. 자신의 교만, 닫힌 마음, 신앙의 결핍, 그리고 이런 것들이 가져오는 수많은 죄악들…. 그러자 하디는 “성령의 임재를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경험했다.
이 사건 이후 하디의 삶은 놀랍게 달라졌으며, 그의 사역에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 더 이상 이전의 하디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붙잡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러한 붙잡힘 보다 아름다운 붙잡힘이 어디에 있겠는가.
은혜를 받기 전 하디는 평범한 의사, 아니 환자들이 기피하는 쌀쌀맞은 의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이 완전히 변했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를 받기를 주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과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이 사건 이후 하디의 삶은 놀랍게 달라졌으며, 그의 사역에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 더 이상 이전의 하디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붙잡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러한 붙잡힘 보다 아름다운 붙잡힘이 어디에 있겠는가.
은혜를 받기 전 하디는 평범한 의사, 아니 환자들이 기피하는 쌀쌀맞은 의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이 완전히 변했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를 받기를 주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과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1903년 하디 선교사의 회개 기도에서 촉발된 회개 부흥운동은 삽시간에 한국 전체로 퍼졌고, 한국의 대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을 필두로 1907년 한국의 대부흥 운동으로 이어졌으니 한국 부흥의 첫 제물은 미국 남감리교선교부의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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