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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회심 1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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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047회 작성일 13-06-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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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는 캐마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에 의료 선교사로 1890년 부산에 도착하여 주님의 사명을 감당한 종이다.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선교에 최선을 다했지만 굶어 죽기 직전의 재정적 어려움, 계속되는 선교 사역의 실패, 큰 딸 메리의 죽음....


강릉중앙교회1대목사와  양양감리교회의 1대 목사로 강원도 북구 선교를 다했지만 교인은 점점 줄어들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되지 못했다.

하디는 "이건 아니다. 내가 선교지를 잘못 선택한거야. 조선은 교회와 맞지 않아!" 하며 조선사람들을 향한 증오와 경멸이 타올랐다.


그 때 마침 중국의 화이트 선교사가 휴가차 조선을 찾았다. 하디는 화이트에게 불평을 털어 놓았다.

"조선 사람은 잘 씻지도 않는다. 화장실도 없다. 저 무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나와 가족들을 조롱한다. 이 땅은 결국 망할 것이다!" 라고...


그 때 화이트 선교사는 하디를 달래며 요한복음 14장을 함께 묵상하였다.


바로 그 때 하디에게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어 왔다.

그는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성령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는 우너산교회 회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였다.


"나는 실패한 선교사 입니다. 나는 한국인을 업신 여겼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진실로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정말 오만하고 불손한 선교사입니다. 그 모든 죄를 직므 여러분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두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조선인들은 그때까지 울면서 설교하는 선교사를 본적이 없었다. 여기 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금을 떼어먹은 조폐국 직원, 축첩을 당연히 여겨온 거만한 양반,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부자..., 예배당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하였다.

교인들은 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용서를 빌었다. 훔친 것을 돌려 주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1903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이다. 이 운동은 서울과 개성으로 번졌고...결국 1907년 평양대부흥으로 이어졌다. 할렐루야!


얼 여름...그래서 더욱 뜨겁게 캠프가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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